⚽️ Buffon “후보선수 시절을 겪으며 ‘사람’으로 성장했다” - 심층 대담 1편

🧤 Buffon (자문위원 C) 소개 - 개혁적 실천가의 새로운 발걸음

Buffon, 선수 시절을 회고하며 자신의 전환점을 되짚는다.

지난 두 차례의 콘텐츠(6.17 「여정의 시작」, 7.3 「본격 대담」)에서는 프로 무대에서 은퇴한 뒤, 새로운 삶을 시작한 Buffon을 소개했다. 그는 단지 선수로서 퇴장한 게 아니라, 연대하고 실천하는 ‘주권자’로 전환 중이다. 침묵하는 축구계, 외면하는 정치권, 말문이 막히는 고향에서 그는 질문을 던졌고, 그 질문에 행동으로 응답하기 시작했다.

이번엔 한 걸음 더 들어간다. ‘심층 대담’이라는 이름 아래, 주제를 좁히고 질문과 답을 천천히 주고받았다. 오늘 공개하는 1편에서는 Buffon이 선수로 살았던 시간, 그 안에서 어떤 감각을 키워왔는지를 살펴보려 한다. 잘나가던 시절도 있었고 벤치에 오래 앉았던 시절도 있었다. 그 사이에서 달라진 시선, 깨달은 감정들에 대해 들어본다.

🧑‍🚀 소장 “학창시절, 축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며 어떤 변화와 고민이 있었는지?”

학창시절을 어떻게 보냈습니까? 축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변화가 있었습니까? 그 시절이 어떻게 기억이 남아 있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학생선수’로서 고민했던 점이 있습니까? 우리가 관련 정책을 논했어서 드리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 Buffon “학생선수보다 ‘축구선수’, 축구 아니면 죽는다”

그야말로 운동선수의 표본이었습니다. 축구 아니면 죽는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제가 훌륭해서 그런 생각을 한 것이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좋은 지도자를 만난 덕이었습니다. 축구를 열심히 하면 나중에 실컷 놀고 돈 벌고 맛있는 거 먹고 이쁜 여자 사귈 수 있다며, 선수가 되기 전까지는 참고 인내해야 한다고 말해주는 지도자를 축구 인생 처음인 중학교 때 만났습니다. 큰 행운이었습니다. 당시에는 학생선수로 큰 고민이 없었습니다. 공부? 축구만 잘하면 된다는 그런 생각뿐이었죠. 학생선수보다는 축구선수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 소장 “잘 나가던 시절과 벤치에 앉았던 시간 사이, 어떤 생각과 감정이 있었는지?”

프로 유스, 명문대, 1부리그 출전 등 초기 커리어가 꽤나 훌륭합니다. 물론 중간에 부침도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골키퍼라는 특수 포지션임에도 20대 초중반에 프로무대에 몇 경기 출전했던 것만으로도 출발이 나쁘지 않았다고 봅니다. 즉, 잘 나가면서 촉망받을 때도 있었고 후보 선수로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고 짐작됩니다. 한때 주목받았던 시간과 벤치에 앉아 있던 시간, 그 사이에서 어떤 생각들이 드셨습니까?

🧤 Buffon “후보 선수로 벤치에 앉으며, ‘사람’으로 성장했고 약자의 마음과 정치적 전환점을 마주했다.”

잘 나갔었죠. 그야말로 무서울 게 없었던 아마추어 시절이었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많은 프로선수를 배출한 포철공고, 한국 대학축구의 근본이자 한국축구의 자존심 고려대. 그리고 졸업도 안 하고 조기 K리그 입단. 하지만 최상위 레벨은 다르긴 달랐습니다. 아마추어와 다른 환경, 다른 대우에서 빠르게 적응을 하지 못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사람으로 성장한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아마추어 시절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후보 선수들의 마음.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감 능력이 월등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사실 아마추어 때는 지금의 ‘수구 파시즘’ 정당 국민의힘 마인드와 비슷했습니다. 실제로도 새누리당을 지지했었고요. 하지만 내가 약자들의 입장에 있으면서 사회 전체 약자에 대한 생각이나 공감의 깊이가 달라졌고, 그때부터 민주당에 끌렸습니다.

🧑‍🚀 소장 “현역 시절 가장 영향을 준 축구계 인물은?”

현역 시절, Buffon에게 가장 강한 영향을 주었던 지도자나 동료는 누구입니까? 어떤 점에서 영향을 받았는지, 기억에 남는 장면이나 맥락을 중심으로 설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Buffon “조민국 감독님, 끝까지 책임지는 아버지 같은 지도자”

20살, 울산현대미포조선(당시 ‘한국실업축구연맹’의 ‘내셔널리그’ 소속)에서 만났던 조민국 감독님입니다. 조민국 감독님은 선수들을 카리스마로 휘어잡는 스타일이자 아버지 같은 스타일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제자를 끝까지 책임지고 믿어주고 절대 업신여기지 않는 그런 지도자입니다.

“누구를 은사로 생각하냐”라는 질문에 조 감독님을 꼽으면, 질문을 했던 사람들이 “조 감독님을 은사라고 뽑는 사람들이 여기 또 있네”라고 할 정도로 실제로 많은 선수들이 조 감독님을 은사로 뽑기도 합니다.

🧑‍🚀 소장 “그 분은 축구계 내부 평판과 팬들의 평가가 엇갈리는데?”

조민국 감독께서는 2014년 울산 현대의 지휘봉을 잡았으나 좋은 결과를 거두지 못했기에, 팬들에게는 유능한 지도자로 거론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한편 많은 선수들이 그를 은사로 여긴다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대내적, 대외적 평판이 상이한 경우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정치인도 비슷한 평가를 받을 수 있습니다. 업계 관련자들로부터 능력을 인정 받더라도,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해 당선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서 드리는 질문입니다.

🧤 Buffon “보여지는 ‘업적’보다 ‘정’, ‘소속감’, ‘자긍심’이 더 중요, 조 감독님은 ‘영원한 은사’로 기억될 것”

세상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조민국 감독은 축구계에서 잊혀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보다 뛰어난 감독도 많고 뛰어난 선수도 많이 나올 것입니다. 그러나 운동장 밖에서 그는 영원한 스승이자 은사로 기억될 것입니다. 매 생신때마다 수많은 제자들이 조 감독님의 생일을 챙기며 모여서 식사를 하고 옛 추억에 잠겨 웃고 떠들고 그 시절을 회상할 것입니다. 조 감독님께서 집안의 사정이 생긴다면 우리 제자들은 다함께 십시일반 모아 힘을 보태며 진심으로 걱정하고 찾아뵐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제자들 중 누군가는 아이들에게 그런 선생님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그 노력은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어 갈 것입니다.

저는 세상에 보여지는 ‘업적’도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이 사람과 사람이 살아가는 ‘정’, ‘소속감’, ‘자긍심’ 이런 것들이 보여지는 업적만큼 세상을 바꾸고 더 밝게 빛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적이 전부였다면 매년 추앙받는 스승님은 달라지겠죠. 하지만 20년, 30년이 지나도 조민국 감독님을 은사로 모시는 사람들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세상에 보이는 것은 잠깐이고 드러나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고 생각합니다. 잠깐 살기 위해 영원히 죽는 길을 선택하지 않는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명언이기도 합니다.

🧑‍🚀 소장 “프로 은퇴 후 대학을 다시 다니게 된 이유”

최근에 학사과정을 마무리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학교 생활은 프로 입단 전과 은퇴 후, 두 시기에 걸쳐서 하셨던 것으로 보이는데, 어떤 이유로 다시 시작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 Buffon “졸업장을 따려고 복학했고 지금은 ‘수료’ 상태, 어학 어떻게 준비할까요?”

대학을 3년만 하고 프로에 입단을 했습니다. 프로 생활 중 휴학과 제적을 거쳤다가 프로 은퇴 후 남은 1년을 다니고 졸업장을 따자고 계획했습니다. 학생선수 때는 졸업 요건인 TOEIC이 강의로 대체가 되는데, 마지막 1년을 다닌 시점은 ‘일반 학생’으로 전환이 되어 TOEIC 600점을 맞아야 졸업이 됩니다. 정확히 말해서 지금은 ‘수료’입니다.

TOEIC 600점… 어떻게 보면 낮은 점수이지만 영어 베이스가 아예 없는 저로서는 까마득합니다. 그래서 요즘은 아침 10시부터 새벽 2시까지 독학으로 하루를 정신없이 보냅니다. 오늘은 TOEIC 시험을 치고 여유가 생겨 이렇게 답도 드립니다. TOEIC 600점을 맞으면 제 인생 큰 산을 넘는 것입니다… 가능하겠죠? 😂 많은 구독자 분들의 팁 공유를 부탁드립니다.

🧑‍🚀 소장 “은퇴 후 만난 사람들 중 기억에 남는 인물이 있는지?”

은퇴 후 많은 사람들을 만나셨다고 했습니다. 선수 시절에는 결코 만날 수 없었던 사람들 중, 어떤 분들이 특별히 기억에 남고 인상적이었는지 소개해 주실 수 있습니까?

🧤 Buffon (’25.07.03) “아마 평생 살아온 것보다 은퇴 후 1년이 새 분야의 사람들을 가장 많이 만났던 시기였을 것입니다. 선수 생활을 할 때는 만날 명분도 기회도 없었지만 이후에 새로운 일을 도모하기 위해 새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저에게 또 다른 기회이자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 Buffon “한 사람만 꼽기 어려울 정도, 최근에서는 ‘고려대 민주동우회’에서 만난 선배님들”

한 사람만 꼽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아! 최근에는 고려대학교 민주동우회에 나가서 선배님들에게 인사를 드렸습니다. 이런 경험이 정말 소중합니다.

🧑‍🚀 소장 “민주동우회 행사는 어떤 분위기?”

고려대학교 민주동우회 행사는 누가 참석하고 어떤 순서로 진행됩니까? 현장의 분위기도 궁금합니다.

🧤 Buffon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고려대인 모두에게 열린 모임, 앞으로도 함께 하고파”

과거 고려대학교에서 학생운동을 했던 선배들이 참석하고,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고려대 졸업생·재학생 누구나 함께할 수 있는 열린 모임입니다.

1986년 6월 항쟁 이후 결성돼 민주주의의 선봉에 섰고, 지금도 불의 앞에 앞장서는 단체입니다.

가장 잘 알려진 멤버로는 임은정 검사, 박종훈 대령이 있고, 매년 고려대 출신 민주열사들을 추모하는 시간도 가집니다. 분위기는 엄숙하지만 서로 안부도 나누고, 민주주의에 대한 열의를 다짐하는 강령한 자리이기도 합니다.

저는 올해 손병휘 가수님의 초대로 처음 참석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함께하고 싶습니다. 이런 모임이 있다는 걸 이제야 안 게 부끄럽기도 합니다.

 🧑‍🚀 소장 “PSFI와 함께 하기로 한 이유는?”

PSFI라는 일종의 ‘미디어 실험’ 공간에 함께 하기로 결심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덧붙이자면 연구소장은 이 활동이 연구소와 Buffon 모두에게 도움을 주는 ‘윈윈‘ 구조가 되기를 바랍니다.

🧤 Buffon “제 이야기를 전하는 게 재미, 제 삶 자체가 스토리”

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을 좋아합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실업팀 입단. 그리고 대학교 진출. 대학교에서 프로 입단. 좌절을 거듭하는 평범한 선수였지만 그 누구보다 화려한 은퇴. 2024년 NEXON 아이콘 매치 이벤트에 초청되어 우상(이탈리아 전설의 골키퍼 Gianluigi Buffon)을 만나기까지. 그리고 행정과 정치의 선을 넘나드는 현재. 제 이야기 재미있지 않을까 싶어서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 소장 “연구소 콘텐츠 중 인상 깊었던 내용은?”

연구소의 콘텐츠 중 기억에 남는 내용이 있습니까? 혹시, 자신의 생각에 영향을 준 내용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 Buffon “저런 생각을 할 수도 있구나…”

다 읽어보지는 못하지만 챙겨보려 합니다. 영향까지는 아니고 저런 생각을 할 수도 있구나 정도는 느끼는 편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Buffon이 가장 먼저 부딪힌 공간, 고향 영덕에서의 선거 경험을 따라간다.

다음 편에서는 Buffon의 고향, 영덕 이야기로 넘어간다. 보수색 짙은 지역에서 민주당의 이름으로 선거운동을 한다는 것, 그 안에서 마주한 감정과 장벽, 그리고 유권자들과의 날것 같은 접촉들에 대해 들어본다. 정치는 결국 공간의 싸움이고, 고향은 그가 가장 먼저 부딪힌 공간이었다.

이후 시리즈에서는 정치에 뛰어든 계기와 과정, 앞으로의 진로 설계, 그리고 Buffon이 밀도 있게 고민해온 체육 정책까지 차례로 다뤄볼 예정이다.

📬  “구독자들의 질문과 의견을 받고 있습니다.”

궁금한 점이나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면 아래 채널을 통해 전달해 주시기 바랍니다. Buffon에게 직접 전달하거나, 다음 콘텐츠 기획에 반영해 보겠습니다.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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